노트테이킹과 PKM(Personal Knowledge Management)을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좋은 생각을 잊지 않고, 읽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진행 중인 일도 조금 더 잘 관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방법을 써봤다. Zettelkasten, PARA method, SecondBrain CODE, LLM-WIKI 등등. 각각은 분명히 설득력 있었다. 그런데 모두를 그대로 내 생활에 가져오면 오래가지 못했다.
어떤 방법은 너무 자주 정리해야 했고, 어떤 방법은 기록하는 것보다 구조를 설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만들었다. 결국 내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노트테이킹 기법 하나가 아니라, 각 방법이 풀려는 문제를 이해하고 필요한 부분만 가져오는 일이었다.
이 글은 내가 겪은 실패를 정리하는 글이기도 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Inbox: 일단 잃어버리지 않기
가장 먼저 필요했던 방식은 인박스다. Zettelkasten에서는 fleeting notes라고 한다. 떠오른 생각, 읽다가 저장하고 싶은 문장, 나중에 볼 링크를 한곳에 빠르게 넣는다.
인박스의 목적은 정리가 아니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메모를 만들 때마다 태그를 붙이고, 적절한 디렉터리를 골랐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것이 큰 마찰이었다. “이건 개발인가, 생산성인가, 글감인가?” 같은 질문에 답하는 사이에 메모할 이유가 사라졌다.
그래서 인박스는 좋았다. 지금은 적고, 분류는 나중에 한다. 적어도 생각을 놓치지는 않으니까.
문제는 인박스가 쌓이기 시작한 다음이다. 인박스만 믿으면 결국 다시 찾지 못하는 메모 창고가 된다. 인박스는 노트를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잠시 머무는 곳이어야 했다.
불릿 저널: 오늘을 운영하기
불릿 저널(Bullet Journal)은 할 일, 일정, 짧은 기록을 빠르게 남기는 방식이다. 오늘 해야 할 일과 오늘 있었던 일을 같은 흐름에서 볼 수 있다.
이 방법의 목적은 현재를 운영하는 것이다.
긴 회고를 남기지 않더라도, 짧은 기록이 쌓이면 내가 시간을 어디에 썼는지 알 수 있다. 완료하지 못한 일도 자연스럽게 다음 날로 넘어간다. 복잡한 작업 관리 시스템보다 오히려 계속 쓰기 쉬웠다.
불릿 저널의 경우 아날로그 노트에서는 아직도 잘 쓰고 있다.
그런데 시간 순서로 쌓이는 기록에는 한계가 있다. 몇 달 전에 읽은 글에서 얻은 생각이나, 특정 주제에 관한 메모를 다시 찾으려면 일간 노트를 계속 뒤져야 한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노트에 적은 내용을 컴퓨터로 옮겨줘야 한다.
그래서 불릿 저널은 지식을 쌓는 방식이라기보다, 오늘을 잊지 않고 운영하는 방식으로 보는 편이 맞았다. 그래서 불릿 저널은 인생을 관조하는 목적에 적합했다.
외부 링크 https://bulletjournal.com/blogs/faqPARA: 정보와 프로젝트를 연결하기
PARA는 Projects, Areas, Resources, Archives로 정보를 나누는 방식이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 계속 관리할 영역, 참고 자료, 끝난 자료를 구분한다.
이 방법의 목적은 정보를 지금 하는 일에 붙이는 것이다.
프로젝트에는 끝나는 시점이 있다. 블로그 글 하나를 쓰는 일, 여행을 준비하는 일, 새로운 것을 공부하는 일이 그렇다. 반면 건강이나 재무처럼 끝나지 않는 일도 있다. PARA는 이런 차이를 구조에 반영한다.
문제는 이 구조를 너무 엄격하게 지키려 했다는 것이다. 어떤 노트는 프로젝트이면서 리소스였고, 시간이 지나면 영역이 되기도 했다. 나는 “이 노트는 어디에 있어야 하지?”라는 질문을 너무 오래 붙잡았다.
그 결과 디렉터리 구조를 자주 바꿨다. 처음에는 더 나은 구조를 찾는 일처럼 보였다. 그런데 노트를 쓸수록 구조를 손보는 일이 반복됐다. 지금 생각하면 정보를 잘 관리한 것이 아니라, 분류 체계를 계속 다시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
PARA에서 가져갈 것은 네 개의 폴더가 아니라, 지금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자는 기준이었다.
외부 링크 https://fortelabs.com/blog/para/제텔카스텐: 생각을 연결하기
제텔카스텐(Zettelkasten)은 하나의 노트에 하나의 생각을 담고, 다른 노트와 연결하면서 지식을 쌓는 방식이다.
이 방법의 목적은 정보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생각 사이의 연결을 만드는 것이다.
처음에는 모든 노트를 작게 나누고, 링크를 많이 만들수록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노트끼리 이어지는 모습은 꽤 그럴듯했다. 그래프 화면도 멋있었다. 문제는 링크가 많다고 생각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인용문과 링크만 남긴 노트는 나중에 봐도 내가 왜 저장했는지 알기 어려웠다. 반대로 짧더라도 내 말로 적은 노트는 시간이 지나도 다시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제텔카스텐에서 내게 남은 것은 복잡한 연결 규칙이 아니다. 오래 생각할 가치가 있는 내용이라면, 왜 중요했는지 내 말로 적고 다른 생각과 연결해 본다는 습관이다.
다만 모든 메모를 이렇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장보기 목록이나 회의 중 할 일까지 하나의 생각으로 다듬기 시작하면 노트테이킹 자체가 일이 된다.
외부 링크 https://zettelkasten.de/introduction/아직 써보지 않은 ACE 프레임워크
최근에는 ACE 프레임워크도 눈에 들어왔다. ACE는 Atlas, Calendar, Efforts의 약자다. 지식과 아이디어는 Atlas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남는 기록은 Calendar에, 지금 행동이 필요한 일은 Efforts에 둔다.
내가 겪었던 문제와 맞닿는 부분이 있었다. 태그와 디렉터리로 모든 노트를 한 번에 분류하려 했던 대신, ACE는 노트의 주제보다 지금 어떤 맥락에서 쓰는 노트인지에 주목한다.
- Atlas는 오래 남길 지식과 생각을 위한 공간
- Calendar는 일간 노트, 회의록처럼 시간과 함께 쌓이는 기록
- Efforts는 프로젝트와 진행 중인 일처럼 행동으로 이어지는 노트
특히 옵시디언에서는 이 구분이 꽤 실용적으로 보인다. 일간 노트에 빠르게 기록한 내용을 모두 지식 노트로 다듬을 필요는 없고, 프로젝트 노트와 오래 남길 생각을 같은 폴더에서 억지로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아직 직접 사용해 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나에게 맞는 답이라고 말하기는 이르다. PARA와 제텔카스텐을 쓰며 배운 것처럼, 먼저 내 문제를 해결하는지 충분히 써본 뒤에 판단하려 한다.
ACE가 흥미로운 이유는 새로운 정답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시간·행동이 서로 다른 종류의 노트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외부 링크 https://blog.linkingyourthinking.com/notes/ace-folder-framework한눈에 비교해 보면
| 방법 | 해결하려는 문제 | 핵심 기준 | 내게 맞았던 점 | 주의할 점 |
|---|---|---|---|---|
| Inbox | 떠오른 생각을 놓치지 않기 | 빠른 기록 | 분류 부담 없이 바로 적을 수 있다 | 쌓아 두기만 하면 메모 창고가 된다 |
| Bullet Journal | 오늘의 일과 기록을 관리하기 | 시간의 흐름 | 할 일과 짧은 기록을 함께 볼 수 있다 | 오래된 지식이나 특정 주제를 찾기 어렵다 |
| PARA | 진행 중인 일에 정보를 연결하기 | 행동 가능성 |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료를 가까이 둘 수 있다 | 폴더 구조를 너무 엄격하게 만들기 쉽다 |
| Zettelkasten | 생각을 연결하고 발전시키기 | 노트 간의 연결 | 글감과 생각을 내 말로 쌓을 수 있다 | 모든 메모를 작은 노트로 만들면 부담스럽다 |
| ACE | 지식·시간·행동의 맥락을 나누기 | Atlas·Calendar·Efforts | 옵시디언의 서로 다른 노트 역할을 구분하기 좋아 보인다 | 아직 직접 사용해 보지 않아 검증이 필요하다 |
실패의 시작은 태그와 디렉터리였다
돌아보면 내가 반복한 실수는 세 가지였다.
첫째, 태그를 무분별하게 사용했다. 태그가 많아질수록 기준은 흐려졌다. 비슷한 태그가 계속 생기고, 어떤 노트에는 태그를 붙이지 않게 됐다. 검색과 분류를 위해 필요한데 오히려 검색과 분류에 노이즈가 되어버렸다.
둘째, 디렉터리 구조를 너무 자주 바꿨다. 미래의 모든 노트를 수용할 구조를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미래의 메모는 늘 예상 밖의 모습으로 들어왔다. 결국 자주 바뀌는 구조는 좋은 구조가 아니었다.
셋째, 목적 없이 유행을 따라갔다. 누군가의 vault 구조나 태그 체계가 좋아 보이면 바로 가져왔다. 하지만 그 방법이 해결하려던 문제와 내가 가진 문제가 같지는 않았다. 도구와 방법은 가져왔지만, 왜 필요한지는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노트테이킹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번쯤 겪는 일 아닐까. 노트를 쓰기보다 노트 시스템을 만지는 시간이 늘어나는 일 말이다.
옵시디언에서 세운 기준
여러 방법을 거치고 나서, 옵시디언에서는 특정 기법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몇 가지 기준을 세우게 됐다.
첫째, 기록할 때는 분류를 강요하지 않는다. 빠르게 남겨야 하는 것은 인박스나 일간 노트에 둔다.
둘째, 디렉터리는 적고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폴더는 생각을 설명하기 위한 분류 체계가 아니라, 찾기 쉬운 위치를 만드는 용도여야 한다.
셋째, 태그는 주제가 아니라 가로지르는 맥락에만 쓴다. 폴더와 태그가 같은 일을 하게 만들지 않는다.
넷째, 링크는 많이 만들기보다 이유가 있을 때 만든다. 연결된 노트가 나중에 다시 생각할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트 시스템은 계속 고치는 대상이 아니라 계속 쓰는 대상이다. 불편한 점이 생길 때만 조금씩 바꾸면 된다. 처음부터 완벽한 구조를 만들 필요는 없다.
결국 방법보다 목적이다
이 표를 보면 가장 좋은 방법 하나를 고르는 일보다, 지금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지 먼저 아는 편이 중요해 보인다.
나는 인박스로 생각을 붙잡고, 불릿 저널로 오늘을 기록하고, PARA로 진행 중인 일을 정리하고, 제텔카스텐 방식으로 오래 남길 생각을 연결해 보려 한다. ACE 역시 이 흐름을 더 단순하게 만들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다.
결국 PKM은 정답을 복사하는 일이 아니라, 내 생활에서 계속 쓸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일에 가깝다. 규칙을 추가하는 것보다 정리하고 덜어내는게 중요한 순간이었다.
앞서 얘기한 기준과 규칙을 바탕으로 PKM을 정리하고 나만의 방법을 정리하여 다시 공유하겠다.